1981년의 어느날, 유레일패스(Eurail Pass)를 가지고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기차로 파리, 브뤼셀,
암스테르담, 함부르그, 프랑크푸르트에 들러 용무를 마치고, 또 다른 거래선이 있는 소도시
베츨라(Wetzlar)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북쪽,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곳, 청년 괘테가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 젊은 베르테르의 연인 롯데, 롯데하우스가 있는, 古城이 아름다운 작은
도시.
지금도 그렇지만 호텔예약 없이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숙소를 결정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그곳의 유일한 호텔은 마침 휴무였다. 어쩔수없이 택시를 타고 가까운 지역에 있는 호텔로
안내하기를 부탁했다.
파크호텔(Park Hotel). 교외 숲속에 자리한 조그마한 호텔. 체크인을 하고 보니 방은 대여섯 개의
아담한 호텔이지만 방은 크고 깨끗했다. 2층 구조의 호텔. 1층에는 사무실과 탕비실, 조그마한
식당과 사우나가 있고 2층은 객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투숙객은 사우나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가운과 타올을 받아서 객실에서 갈아 입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식당을 지나 사우나동에 들어간다.
사우나동에 들어가니 샤워장이 있다. 놀랍게도 남여가 완전 나체로 같이 샤워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일요일 오후라서인지 사람도 제법 많았다. 독일 사우나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몹시 당황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남들이 하는대로 제법 익숙한척 행세했다. 마침
샤워장내에 사우나의 요령에 대해서 조목조목 친절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우선 깨끗이 샤워하고 몸을 말린후 발을 따뜻한 물에 담궈서 피로를 풀기를 권한다. 핀란드식
사우나에 들어 갈 때에는 물기 하나 없이 몸을 닦은 다음 등신대의 타올을 들고 들어가서
의자에 그것을 온전히 편 다음 그위에 앉거나 누워서 사우나를 즐기면 된다. 한 방울의
땀도 의자에 흘리지 않고 모두 타올에 받아 나와야 한다. 나무가 하얗고 보송보송한 것을 보면
이용객들이 얼마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남녀공용이다. 모든 시설이 공용이다. 놀라운 것은 처음인데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연인, 친구, 가족끼리, 심지어 시집식구들과 며느리, 처가식구들과
사위, 사돈지간에도 같이 사우나를 즐긴다. 사우나가 지역사회의 사교장 역할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성끼리만 사우나를 하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 몸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들을 위해 <숙녀사우나(Damen Sauna)>라는
것이 있단다. 이를테면 월요일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 일주일에 두세 시간, 가장 한가한 시간을
내어 숙녀사우나를 허용한다.
타올에 땀을 받아 핀란드 사우나를 나오면 다시 샤워를 하고 옥외 풀장에서 수영을 즐긴다. 물론
완전한 나체로. 옥외 풀장은 한겨울에도 섭시 25도를 유지한다. 수영에 실증이 나면 숲속에서
산책을 하거나 벤취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산책을 마치면 다시 샤워하고 따뜻한 옥외
버블탕에 들어가서 몸을 덥힌다.
시간이 있으면 다시 몸을 깨끗이 닦고 피트니스실에 들어가 헬스를 하든지 휴식실(Solarium)에
들러 적외선 마사지를 하거나 수면을 취한다.
샤워를 한 다음 가운을 입고 식당으로 나오면 각종 맥주와 와인등 음료수와 경양식을 즐길 수
있다. 호텔 주인 Mr. Thiel이 주방장도 겸하고 있다. 매우 친절하고 지성미 넘치는 신사로서
영어도 잘하는 것 같았다. 1990년대 말까지 한해에 두번 정도 독일 출장을 다녔지만 언제나 이 호텔에
머물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왕복 10시간 가량 걸리는 Munich나 Stuttgart에 일이 있을 때에도
새벽에 출발하여 일을 본 후 사우나를 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돌아온다. 잊을 수 없는 Park Hotel로!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대형 사우나, 숲이 아름다운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지대에 있는 소도시 나골드(Nagold)의 호텔 사우나, 뮌헨(Munich)의 테니스장 부속 간이 사우나등
여러 곳의 사우나를 다녀 보았지만 결론은 Park Hotel Sauna!
주의할 점은 사우나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수영장에서는 반드시 수영복을 착용해야
한다든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눈이 마주치면 하이!라고 하든지 미소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 더욱 좋을 것이다.
뻔질나게 다니던 유럽 출장도 1999년부터인가 없어졌다. 2006년 3월 처음으로 아내를 데리고
15일간의 베낭여행을 떠났다. 물론 Park Hotel을 빼놓을 수 없다. Mr. Thiel은 너무 오랜만에 왔다고
반가워 한다. 체크인하고 바로 사우나에 가려는데 아내도 가겠다고 고집이다. 철저하게 사전교육을
한 뒤에 아내와 사우나에 들어갔다. 무사히? 사우나를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같이 사우나를 했던 남자가 "아름다워요(Schoen)"라고 공치사한다. 동양여자의 벗은 몸은
난생 처음 보았을 것이다. 빚의 일부라도 갚은 심정.
만약 처음 유럽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유레일패스를 이용한 기차여행을 권하고 싶다. 일정에
쫒길 필요 없이 다닐 수 있고 대도시에서 관광을 하드라도 기차를 타고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소도시의 깨끗하고 값싼 호텔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파크호텔 같은 사우나가
딸린 호텔을 만날 수도 있고. 독일여행에서 사우나를 뺀다면 속 없는 찐빵을 먹은 것이다.
아! 그리운 Park Hotel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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