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원일기

문경일기:메주 만들기

선문농원 2009. 11. 30. 08:10

11월 28일 토요일 오전 11시경 막내 누나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주말 이틀 동안 메주를 쑤기로 약속이 

되어 40Kg들이 두포 반을 600L들이 큰 물통에 불리는 중. 전날 오후 4시부터 불리기 시작했으니

20 시간쯤 불린 셈이다. 큰 솥 2개로 삶아낼 계획. 양은솥 1개와 얼마전 상주 함창 고물상에서 사온

무쇠솥.

 

솥에 물을 적당히 잡고 아궁이에 소나무 둥치로 불을 세게 짚혀서 물이 끓어오를 때 쇠조리로 인 콩을

쏟아붓는다. 불을 계속 강하게 때어 콩이 끓어 넘치려고 하면 뚜껑이 가벼운 양은솥은 뚜껑을 적당히

열어 넘치지 못하게 하고 뚜껑이 무거운 무쇠솥은 뚜껑 위에 찬 물을 끼얹어 가라앉힌다. 이렇게

센 불로 1시간 가량 끓인 뒤에 아주 약한 불로 뜸을 들인다. 콩를 삶는데만 6시간. 두 손가락으로

낱알을 잡고 가볍게 비벼서 잘 뭉그러지면 잘 돤 것이다.

 

바구니에 콩를 퍼담아 콩 삶은 물을 뺀다. 바구니 밑에는 들통을 받혀 물을 받는다. 이 물은

아미노산이 풍부한 영양제로 사과나무에게 줄 것이다. 물을 보관하는 용기는 주둥이가 넓어야

한다. 물이 식으면 아교처럼 굳어지기 때문에.

 

건져낸 콩은 콩을 담았던 포대에 넣고 발로 밟아 으깬다. 어릴 때 어머니와 형수는 디딜방아로

콩을 찧어 메주를 만들었다. 어떤이들은 절구에 찧는다고 들었지만... 그때에는 가마니나

무명베 자루밖에 없었다. 가마니는 너무 거칠고 무명베 자루는 콩을 밟아 으깨기엔 너무 약하다.

일이 아주 시워졌다는 얘기다.

 

메주틀위에 광목 보자기를 잘 편 다음 으깬 콩을 주걱으로 뜨서 메주틀 구석구석 꼭꼭 다져넣고

보자기를 덮어 발로 가볍게 밟아준다. 이때 메주 뜨는 솜씨가 들어난다. 잘못하면 구멍이

숭숭하거나, 얇거나 두껍고 비뚤어진 메주가 되기 십상이다. 메주틀이 없으면 도시락통 같은

그릇을 이용해도 된다. 가급적이면 사각난 것이 좋다. 메달기 쉬우니까.

 

황토 바닥 사랑방에 멍석과 대나무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볏짚을 편다. 볏짚 위에 메주를 쏟아

놓고 방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선풍기 까지 돌려준다. 때때로 앞뒤로, 모로 뒤집고

돌려서 잘 말려야 한다. 방바닥은 콩을 삶느라 쳐댄 불로 뜨거뜨건하니 더 잘 마른다. 밤새 등을

켜서 쥐들을 막는다. 요즘은 먹을 것이 많아 괜찮겠지만.

 

적당히 마르면 볏짚으로 엮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끝이나 감타래에 매단다. 양파주머니에

넣어 건조하는 사람도 많은데 일은 쉽지만 전통방식은 아니다. 볏짚에는 메주를 띄우는 균인

바실러스균이  아주 많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청국장을 <짚장>이라고도 부른 소이가 여기에 있다.

 

잘 건조된 메주는 방 아랫목에 볏짚을 켜켜이 넣고 차곡차곡 쌓은 다음 헌 이불로 잘 싸서 띄운다.

가끔 군불을 때어 방바닥을 따끈하게 해주면 더욱 잘 뜰 것이다. 약 2주간 띄운 다음  다시 잘 말리면

맛있는 간장, 된장을 만들 수 있는 메주가 완성된다.

 

누나는 농막에 들른 친구 차편으로 올라가고 마지막 한 솥거리의 메주는 온전히 내몫으로 남았다.

오후 3시반에 앉혔으니 9시반이면 뜰 수 있다.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녀서 피곤이 밀려온다. 잠시

따뜻한 방 바닥에 등을 붙이고 나온다는 것이 내쳐 잠들어 버렸다. 화들짝 놀라 깨니 새벽 3시.

 

솥뚜겅을 열고 콩을 비벼보니 아직도 뜨겁고 잘 뭉그러진다. 서둘러 콩을 으깨어 마지막 공정에

이른다.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드는 일은 누나가 해왔기 때문에 나로선 처음 하는 일이다. 잘 만든다고

애를 쓴다. 그런대로 모양이 괜찮게 나왔다. 어렵쇼! 누나가 만들 때는 8개 내지 8개 반이 나왔었는데

6개 반밖에 안 나온다. 누나는 갯수로 파는 모양인데 낭패다.

 

설겆이까지 끝내고 방에 들어오니 4시반. 5시에 이 글을 쓰기 시작, 지금이 7시 40분이다. 내 손자

손녀가 철이 들어 할아버지의 이 글만 보고도 혼자서 메주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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